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루 리드 (문단 편집) === 솔로 활동 === 그러다가 1971년이 되자 루 리드는 다시 음악을 시작하고자 했고, 런던으로 넘어간 그는 [[RCA 레코드]]와 계약한 뒤 [[예스(밴드)|예스]]의 스티브 하우, 릭 웨이크먼 등의 세션들이 참여한 첫 솔로 앨범을 냈지만 상업적으로 실패하게 된다. 첫 앨범의 다소간 삽질 끝에 이후 [[벨벳 언더그라운드]]의 음악에 깊은 인상을 받았던 [[데이비드 보위]]의 설득과 도움에 힘입어 두번째 솔로 앨범인 [[Transformer(앨범)|Transformer]]를 발표한다. 두왑과 로큰롤을 기조로 벨벳에서 선보였던 퇴폐적이면서 쓸쓸한 멜로디 감각을 되살려낸데다가, 이 앨범에서 프로듀서와 편곡, 백킹 보컬 등을 맡으며 큰 영향력을 행사한 데이비드 보위의 [[글램 록]]적인 세련미까지 어우러져서 뛰어난 명반으로 호평을 받게된다. 특히 나른하면서 감미로운 발라드인 "[[Perfect Day]]"와 도회적인 퇴폐미가 느껴지는 "[[Walk on the Wild Side]]"가 큰 사랑을 받았고, 이 두 곡은 오늘날까지도 루 리드의 대표곡으로 남아있다. 이 앨범은 차트 성적과 판매고로 보자면 벨벳 시절보다 훨씬 좋았다. 특히 글램 록이 큰 인기였던 당시 유럽에선 적지 않은 인기를 누렸고, [[티렉스(밴드)|티렉스]]와 [[데이비드 보위]]에 이은 또 하나의 글램 록 스타 탄생이라는 식으로 대접을 받기도 했다. 하지만 루 리드는 거기서 만족하지 않고 'Berlin'이나 'Metal Machine Music'같은 실험적이고 급진적인 세계로 나아갔고, 히트 앨범인 트랜스포머같은 [[글램 록]]을 계속 원했던 팬들이 떨어져 나가버린다. 그리고는 다시 컬트적인 인지도로 돌아가 조용히 작업을 이어나간다. 중간에 'Coney Island Baby'나 'Street Hassle, The Blue Mask'같은 수작들을 발표하면서 평단의 지지를 얻고 펑크 록 뮤지션들의 지지를 받긴 했지만 잘 팔리는 뮤지션은 아니었다. [[얼터너티브 록]] 열풍이 분 90년대 들어서 본격적으로 재평가되었다. [[1989년]] 'New York' 앨범을 발표하면서 호평과 골드 레코드를 수상하며 분위기가 달라지더니 [[1992년]] 'Magic And Loss'로 영국 차트 6위를 차지한데다 [[벨벳 언더그라운드]]도 록큰롤 명예의 전당에 올라 잠시나마 재결성 공연을 가져 열화같은 지지를 받으면서 기나긴 비인기의 설움을 털어냈다. 그 후 타계할 때까지는 원로로써 꾸준히 활동해왔다. 2010년 [[고릴라즈]]의 3번째 앨범 [[Plastic Beach]]에서 Some Kind of Nature의 피쳐링으로 참여했다. 그 해 [[글래스톤베리]] 페스티벌에서도 고릴라즈의 무대에 올랐다. 2011년 11월 31일 [[메탈리카]]와의 합작 앨범 [[Lulu]]를 발매했지만 혹평 일색을 받았다. 완전 상극인 두 뮤지션이 좀처럼 조화되지 않았다는 평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